모 커뮤니티에 남긴 답변입니다.

같이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이름은 삭제하고 올려봐요.




왠만하면 오지랖 넓게,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는 편은 아니지만.

차근차근 글을 읽다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답글 납깁니다.


21살 청춘에게 띠동갑에 가까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해봤습니다.

그리고 OO씨 나이의 모든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나는 33살이고, 남들은 모두 나에게 성공한 FTM이라고 말해요.

호적정정도 끝냈고, 호적정정 전부터 번드러진 직장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은 국가 기관을 통해서 해외에 나와있기도 하고요.

내가 FTM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있으나, 그들조차 내가 FTM이라는 사실을 잊고 지낼 만큼 시간을 보냈지요.

바닥에 드러누워 가족들과 소리지르던 시기를 거쳐, 이제는 족보까지 모두 고쳤고.

큰 아버지는, 니가 장가가야지 동생들이 장가간다고 다그치실 정도입니다.

그렇게 내 주변의 모두가 내가 FTM임을 잊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 인것 같고요.


이정도면, 부끄럽게도 나에대한 소개는 얼추 됐겠지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자신의 생과 삶이 있고, 그 방식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방식에 대해 가타부타 이야기 하는 것은 사실 쉬운일이 아니예요.

그러나 조금이라도 비슷한 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써, 무엇을 먼저 바라봐야 할지 이야기 해주고 싶어요.


내가 OO씨 나이때, 나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하고 늘 생각했었으니까요.


나는 24살에 FTM이라는게 뭔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치료를 시작하고, 공부를 하고, 새로 직장을 잡고, 미친듯이 일하고, 미친듯이 수술하고 살았죠.

그 와중에 인권운동을 하기도 했고, 많은 아웃팅과 아픔들이 있기도 했고요.

그렇게 30살에 호적을 바꿨습니다.


그전에 나는 아마도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이상한 사람이었겠죠.

아주 오래전 OO씨 나이에 대학을 그만두고, 오토바이 배달, 수리, 혼자 할 수 있는 일용직 일만 찾아 다녔더랬습니다.

대부분은 남자로 보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어정쩡한 성별로 비춰보였을 겁니다.

그래서 나는 아마도 스스로 어정쩡 했을런지도 모릅니다.

나는 아마 나의 청춘을 버려둔 채로 보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나는 그래서 말하고 싶어요.


OO씨 시기에 가장 필요한일은 '재사회화'입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틀에서 벋어나서, 새로운 자신으로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이는 일이요.

그것을 해내지 못하면, 수술을 한들, 호적을 바꾼들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이 모든것을 '뿅'하고 바꿔주진 않아요.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내손으로 호적을 바꿔준 사람이 셀수가 없지만.

그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진 않아요.



지금 가지고 있는 관계들을 모두 정리하고.

새로운 관계들을 만드세요.

불필요 한것들은 꺾어내고 새로운 가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기에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누리세요.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어서 (OO씨를 그저 남성으로 인식하는) 여행을 다니고.

그들과 대화하고 소통하세요.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고, 그속에서 '남성'인 나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시간들이 지속되면 '내가 어떠한 남성인가'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남성인 내가, 자연스러워 지는 시기가 올겁니다.

우리는 모두 내가 '남성'이라는 자각은 있지만,

'내가 어떠한 남성'인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습니다.


그 고민은 인생을 살면서 꼭 필요한 일이예요.



그렇게 그것에 익숙해지면, 인생의 설계를 해야할 필요가 생깁니다.

아주 구체적인 설계들이요.

공부와 일, 수술과 호적정정, 연애와 결혼.. 이런 것들이요.


사람들은 호적이 잘못되어있다고 해서, 당신을 여성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호적이 잘못되어있다고 생각하지, 이사람 여자야? 하고 의심하지 않는다는 소리지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믿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우리들은 거짓말을 능숙하게 해야하는 상황에 맞닥들입니다.

순간순간의 불편한 상황들 (친구들과 사우나가야 할때, 호적 내밀때, 사람들과 MT갈때 등등)을 모두 커버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들 때문에 '재사회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남들의 시선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 '준비되어 있지 않은 내'가 문제인겁니다.


어느순간 그 거짓말들이 거짓말이 아닌 순간이 분명이 옵니다.

"호적이 잘못되어 있다" 라는거, 사실 거짓말이 아니잖아요? :-)


아직 즐길게 많은 청춘입니다.

늙다리 형이 주절댔다고 너무 분노해하진 말고요 ㅎㅎ

차근차근 인생을 봅시다.


해야할 것들을 먼저 하세요.

아프니까 청춘이라지만, 남는게 있는 아픔을 만들어야 하는것도 청춘이 해야할 일입니다.


나는 30살에 호적을 바꾸고 나를 잃었습니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남은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방황하는 30대 청춘을 살고있습니다.

내 인생을 설계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울부짖고, 하고싶은 일을 다시 생각하면서.


잊지 말아요.

지금 OO씨가 해야할 일은 '남성'인 나를 찾는 일입니다.


Posted by 한무지